[사사기 11:1-7,29-36]
1.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서 낳은 아들이었고
2.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라
4.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7.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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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때에
30.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하니라
32.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가지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저비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세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 현대를 가르켜 풍요속의 빈곤이라 한다
우리가 살기는 예전에 다르게 너무 잘살고 풍요롭게 되었는데
너무나 사악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사건 속에서도 불행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 있었다
상처의 깊은 수렁에서 상처를 딛고 일어난 "입다(열린자란 뜻)"는 길르앗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게 되고
하나님께 회개 할때 마다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에게 다시 태평세월을 주셧다
입다는 처도 아닌 첩도 아닌 기생의 아들로 태어남 ,,다시 말해서 매춘부의 아들로 태어남
그로 인해 길르앗의 아내의 자손들에 의해 버림 받고 쫓겨 나서 돕땅에 이르게 되었고
잔류들과 교류하며 살아가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거절의 시대에 살아 가는게 가장 어려운것이라 했다
돕땅===> 산악지역으로서 이름의 의미로는 좋은,선한,아름다운 땅이란 의미가 있다
잡류===> 방탕한,버려진 자들이란 뜻
어느날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처들어 오게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장수인 입다가 떠올름
이스라엘 사람들이 입다에게 와서 장관이 되어달라 ===사령관 ===부탁한다
1.용서의 은혜를 체험함
[본문7절]
7.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용서 은혜가 있는 사람 =입다
ex) 담임 목사님이 심방을 가시던 중에 차선 변경을 위하여 깜빡이를 켯는데 상대 차선에서
차선에 들어간것도 아닌데 미리부터 문을 내리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목사님 마음엔 우리는 너무 강팍해졌다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쉽게 화를 내고 공격을 퍼붓고 감정을 터뜨리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한국교회가 나서야 하는데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교회에게 치유의 사명을 주신 것이다
우리 주위에 상처받고 고통 받은 자들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명령하시는 것만 같았다
치유복음의 핵심 ===>[에베소서 4:31-32]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어떤 원수라도 친절하게대하며 용서하며, 사랑해주라
ex)레프 톨스토이 :1829,9,9(러시아)~1910,11,20(82세)
"당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어떤 사람이던지 어떤 죄를 지었던지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묻거나 책망할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않겠다고 했는데
러시아인들에게 있어 톨스토이 역시 그 정도의 사랑을 받지않았나 싶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사랑이 잘 녹아 있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를 집필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문학관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으나, "부활"의 집필은 앞의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었다.
이 작품에서 동방정교회에 대해 비판을 가하였다는 이유로
1901년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破門)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부활' 이후의 주요작품으로는 '신부(神父) 세르게이'(1898),
희곡 '산송장'(1900), 단편 '무도회의 뒤' '병 속의 아료샤'(1905)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종교와 도덕'(1894) '톨스토이즘에 대하여'(1898)
'현대의 노예제도' '자기완성의 의의'(1900) '유일한 수단'(1901)
'세 가지 의문'(1903) '셰익스피어론(論)'(1903) '유년시대의 추억'(1904)
'러시아 혁명의 의의'(1906) '마을의 노래'(1909),
그리고 최후의 대작 '인생의 길'(1910) 등을 들 수 있다.
2. 성령의 권능을 체험함
[본문29절]
29.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영적으로 암담한 시기일수록 성령이 강하게 임재하신다
사사기는 영적으로 최고 암담한 시대 였다
이스라엘 주변 국이 뺑 돌아 우상을 숭배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도 우상을 숭배했던 때였다
구약 시대엔 성령님이 때에 따라 들어갓다 나갓다 하셧지만--->성령의 권능 상징
신약 시대엔 성령님이 늘 우리에게 임재하시면서 도우신다 --->성령의 임재 상징
==여호와의 영이 임하면 큰 권능이 주어진다
성령은 이미 우리 삶에 역사하신다
약한자 강해지고 미련한자 지혜로와지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상한 마음을 치료 받은 다음 해야 할일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령은 이미 우리 삶가운데 살아 역사하기 시작햇다
많은 사람들 중에 이 사실을 확신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삶을 내어드리지 못하니깐 성령의 권능이 임하질 못한다
목회를 하면서 보면 제일 어려운것이 사람 변화 시키는것이었다
ex) 권사님이 거울 앞에서 남편에게 세월이 흘러 외모가 변화 된걸 말하자
권사님 남편이 대답하기를 감사한지 알아라 그래도 눈은 멀쩡하잖냐 면서 테박을 줬다 한다
이렇듯 우리가 부부로 살면서 조차 속을 뒤집어 놓고 상처를 준다
# 성령의 충만함을 받어라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을 얻을수 있는 사람이 되자
3.신앙의 모법이 됨
[본문36절]
36.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ex)대학생선교회 총재 김중곤 목사님 이 쓰신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
신희의 병환은 어쩌다 늦게사 발견되어 1981년 12월에 개복수술을 받은 때는 이미 위암 말기였다.
집도의의 말에 따르면 수술 중 그냥 덮어버릴까 하다가 수술을 계속 진행했는데
위와 비장 전부를 몽땅 잘라내고 간장 일부와 췌장 일부까지 절제한 후 소장 일부를 잘라서
대용 위를 만들었다고 한다.
신희는 가냘프고 순하며 얼굴도 곱고 공부도 잘하는 데다,
마음과 성품은 더 고와서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였다.
30년을 키웠지만 저만치 호젓이 미안하게 태어나 사는 아이처럼,
태어난 지 3개월만에 광마처럼 뛰는 털털이 만원버스를 타고 네 시간을 가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은 멀미를 하고 아우성인데 신희만은 쌕쌕거리며
예쁘게 잠을 잘 잤던 고마운 기억도 있다.
하루종일 나와 내 아내가 학교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 집 보는 아이가
신희를 입술이 마를 정도로 굶겨놔도 울질 않아서 젖을 못 얻어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걱정을 안 끼치려고 그런 건지 아무리 아파도 꾹 참아버리는 신희의 그 성격이
암을 4기가 될 때까지 참아버리게 한 것이었으리라.
신희의 최대 공포는 참을 수 없는 극한 고통이었다.
수술한 날로부터 167일 동안 다른 암환자들은 단속적(斷續的)으로 통증이 온다는데
신희는 끊임없이 육체의 극한 고통을 받다가 갔다.
끊임없이 토하고 국물만 먹어도 장이 유착 되는데다 장 전면에 퍼진 암 때문에
장 기능이 마비되어 아무리 관장을 해도 보름씩 변이 차고 가스가 찼다.
나중에는 복수가 차서 배가 터질 것 같은 팽만감에다 간 장애로 호흡곤란까지 겹쳤다.
집에 있을 때, 깊은 밤이 되면 식구들에게 방해가 안 되도록 텅 빈 응접실에 혼자 몰래 나와서
그 무서운 복통을 참느라고 몸을 비틀며 울면서 신음하던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진통제들이 잘 듣지 않아 몰핀을 써야 하는데
말기 암환자에게는 몰핀도 듣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아
의사들은 최후까지 몰핀 쓰는 일에 인색하여 많은 암환자들이
죽기 전 일주일 정도는 거의 광란 상태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오랜 투병기간 동안 밤이면 혼자 울어 눈이 부었는데도
누구보다 먼저 세수를 했으며 식구들이 보는 데서는 결코 울지 않았고 너무나 태연했다.
문병 온 사람들이 울어도 신희는 일부러 태연했다.
신희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밖에 없었다.
신희가 토할 때마다 나는 내 죄를 창자까지 토했고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주님과 신희를 번갈아 부르며 숨쉬듯 기도했으나
내 생애의 가장 애절한 기도는 무참히 거절당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나와 아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순종과 수락을 결심하면서부터
지각에 뛰어난 평강이 왔다.
모세의 40년 간의 기도는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느보산 꼭대기에서 요단 건너 땅을 바라만 보게 하시고,
"너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거절을 생애 최후의 선물로 주셨다.
주님의 절대 사랑과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는 힘을 주실 것에 대한 신뢰와
신앙을 나는 다시 고백하고 다시 확인해야 하는 과제 앞에 서게 되었다.
아비된 자로서 열두 번 신희를 대신하고 싶었지만 고통과 죽음만은 대신할 수 없는 것,
오직 주님만이 신희를 대신할 수 있었다.
세상 떠나기 전 날, 신희는 쌕쌕 잠든 상태에 있다가 식구들 하나 하나에게
그리도 맑고 평화스런 눈동자로 미소를 지으면서 반갑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같이 기도할 수 있겠니?"하면
"주여…." 하고는 언어 장애를 알리느라고 손가락으로 입과 머리 부분을 가리키며
잘 안 돌아간다는 신호를 했다.
죽던 날 아침 8시에 내가 가서 기도해 주고 아내도 신희도 잠시 잠든 것 같아서
병실 문을 나오려고 하는데 신희가 손을 들고 "아빠, 아빠."부르더니
"기도, 기도." 두 마디를 외쳤다.
내가 붙잡고 기도했더니 신희는 다시 잠이 들었다.
마음을 놓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간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곧바로 달려가 보니 신희가 숨을 거두고 있었다.
신희는 죽었다. 아내가 신희의 눈을 감겨주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어와 산소 호스와 목에다 심장으로 꽂은 주사바늘을 빼냈다.
신희의 가장 큰 아픔은 어린 두 딸의 문제였다.
아이들은 생명의 본능으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항상 누군가가 병원에서 엄마를 지켰는데 모두 집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엄마는 어디 두고 다 와버렸는가 묻는다.
"엄마는 너무 아파서 예수님이 데려가셨어."
"어디로 데려갔지?"
"하늘나라로 데려가셨단다."
"어떻게 올라갔어? 줄을 내려 올라갔어?"
그 말에는 답을 안 했다.
"그럼, 언제 다시 데리고 오시지?"
이담에 너희들이 크면 예수님이 오실 때 데리고 오신단다.
우리는 의논 끝에 정하와 수연이에게는 비밀로 하고 신희의 장례를 치렀다.
온 식구들에게 신희 이야기가 금기처럼 덮여져 있다.
엄마 얘기를 해선 안 된다고 의논이나 한 듯 일체 언급이 없던 정하와 수연이는
드디어 엄마를 어디다 뒀느냐고 물었다.
가장 무서운 말이었다.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영원히 떠나버린 엄마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소화 못할 아이들에게, 나는 뭔가 대답을 해줘야 했다.
정하는 엄마가 죽은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수연이는 마음 속으로 엄마가 돌아올 날을 몹시 기다리는 눈치다.
자꾸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며 이야기하곤 했다.
"저 구름 위에 엄마가 있어? 우리를 보고 있어?"
이사를 갔다. 수연이가 엄마에게 이사간 집과 전화번호를 알려줬느냐고 상당히 심각하게 말했다.
홀아비가 된 사위는 유별나게 신희를 사랑했었다.
사위는 신희의 그림자라도 느낄 수 있게 아이들과 같이
장인 장모인 우리와 함께 당분간 살기로 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이 처절한 슬픔, 아픔과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무서움.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죽음, 사위에게는 아내의 죽음, 나와 내 아내에게는 딸의 죽음,
아무리 나누어 가져도 가벼워질 수 없는 것이다.
두 딸에게 외국여행 중 매일 같이 전화하던 사위가 날개 부러져 홀로 남겨진 철새처럼 측은하다.
"왜 주님이 이렇게 정하 엄마를 빼앗아 가실까요?"
하고 목이 메이며 신앙적으로도 몸살을 앓는 것을 눈물로 답할 수밖에 없는
나와 내 아내도 측은하기만 하다.
엄마한테 데려다 달라고 생 때를 쓰던 수연이도 심상치 않는 분위기로 눈치를 챈 듯
아이답지 않게 표정을 잃어버렸다.
사위는 요새 사람 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순정의 남성이다.
5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사랑 하나로 버티고 살아왔다.
우리는 사위를 위해 아이들 새엄마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두세 사람을 소개해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 의사도 조심스럽게 떠보았다.
새엄마 얘기를 하자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기대 이상 성숙해 있었다.
봇물 터지듯 억눌려 있던 새엄마에의 그리움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자원하는 처녀들도 생겼다. 문제는 사위의 마음이었다.
정신과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 정신적인 고자가 된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주님이 도우셔서 이삭의 제 2의 리브가가 나타났다.
심성도, 신앙도, 나이도, 미모도 백점인 새엄마가 미국 이민가족 중에서 나타난 것이다.
사위는 우리에게 그 뜻을 의논했다.
엄마는 모름지기 아이들과 서로의 정서주파가 잘 맞아야 한다.
새엄마가 온다는 날, 두 아이들은 설레어 잠을 설친 듯 했다.
큰아이는 보통인데, 수연이가 더 정서적으로 깊은 탓인지
옛날 시골 처녀가 사랑하는 남자 얼굴을 마주 쳐다보지 못해
등돌려 고개 숙이듯 가슴이 떨려 새엄마 얼굴도 아빠 얼굴도 쳐다보지 못한 채
할머니 할아버지만 쳐다보고 시선을 피한다.
수연이는 사과 깎은 것을 새엄마에게 주고 싶은데 직접 주기 쑥스러운지
포크에 찍어 등뒤로 아빠에게 주면서 전하라는 몸짓을 했다.
새엄마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안아 주고 싶은데 조심스러워서 망설였다.
그 모습이 한국인의 잃어버린 감정 표현의 완곡성을 읽는 것 같다.
저만치 호젓이 멀리 심산유곡에 피고 싶은 백합꽃일까.
신희의 화신 같은 수연이. 이렇게 새엄마와의 첫 만남은 순정스럽기만 했다.
정하와 수연이는 내게 수수께끼 걸기를 좋아한다.
"할아버지, 왜 손가락이 다섯인지 알아 맞춰봐."
"글쎄다."
수연이가 말한다.
"내가 가르쳐 줄까? 장갑 끼라고 다섯이래."
손녀딸들과 나 사이는 이렇게 행복했다.
정하와 수연이는 미국에서 새엄마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잘 자라났다.
새엄마와 두 아이들과의 관계는 주위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전혀 계모와 전처 자식 관계로 보여지지 않는다.
새엄마는 우리 부부를 친부모처럼 존경하고 있다.
이렇게 착하고 자랑스런 두 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새엄마는 늘 말하고 있다.
갈수록 제 엄마 신희의 모습과 성품을 닮아 가는 두 아이는 현재 LA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지키지 못할 서원을 할경우 피할길을 주셧고
인신 제사를 드리는것을 금지 하셧다
[신명기 12:31]
31.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레위기27:2]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람의 값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분명히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위와 같이 말씀으로 피할길을 이미 예비해 두셨슴에도 입다가
딸을 번제물로 바친것은 그 딸의 믿음 때문이였다
입다와 그딸에 관하여
입다는 큰 용사였지만
기생에게서 출생했다는 이유로 가문의 위신을 생각한 본처 자식들에 의해서 쫓겨남을 당한다.
그 후 암몬 자손들이 자신들의 땅을 내어 놓아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을 위협하게 되고,
이스라엘은 결국 힘있는 입다를 찾아서 자기들의 머리로 삼을 테니까
암몬의 위협에서 구출해 달라고 요청을 한다.
그리고 입다는 암몬 자손들에게 땅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의 부당함에 대해서 따지게 되고
결국 암몬 자손의 왕은 입다의 말을 거절하고 싸움을 하게 된다.( 11장 앞절 요약)
그렇게 싸움에 출정하는 입다는
하나님께서 암몬을 자기 손에 붙여주셔서 승리하게 되면
돌아오는 자기를 가장 먼저 영접하는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겠다는 서원을 한다.
11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신앙이 흐르고 있다.
천한 출신이라 하여 쫓아내는 길르앗사람들이나
암몬의 위협에 하나님보다는 힘있는 입다를 찾아가는 장로들이나
하나님께 거래를 하는 입다나
그 누구하나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한 터럭도 갖고 있지 못함을 본다.
그 가운데 빛나는 인물 하나가 바로 입다의 딸이다.
아비의 죄로 인해 순결한 상태로 죽음을 맞게되는 입다의 딸.
우리 죄로 인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왜 하나님은 입다의 잘못된 서원을 받아드렸을까?
순결한 입다의 딸을 왜 죽게 하셨을까? 라는 물음에
조용히 내 내면을 돌아보게 하신다.
입다의 딸이 불쌍하니?
그렇다면 네 죄를 대신한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네 마음은 어떠니?
하고 되물으신다.
내 눈이 항상 밖을 향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만 바라본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내면으로 향하는 눈을 기르라 하신다.
나를 바라보는 내면의 눈.
순결하지만 아비의 죄때문에 죽어간 입다의 딸이
아무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내 죄때문에 돌아가셔야 했던
십자가 사건을 내게 다시 상기시킨다.
그리고 언제나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한 일에 대해 괴로워하고 애타했지만
그로인해 하나님의 마음을 읽으려고 그만큼 애타한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 삶의 근원이 이 땅에서의 나의 행복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에 있는지
나의 불행을 통해 알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제야 흐릿하게 본다.
입다는 승리하여 행복했지만
첫번째 영접한 사람이 자신의 딸임을 알고 그 승리의 기쁨은 한순간에
괴로움으로 변했을 것이다.
인간의 기쁨과 슬픔은 그렇게 얄팍한 것이다.
하나님
불신앙이 만연한 세상속에서
믿음의 잣대를 세상이 아니라 나에게 돌이키고
내가 먼저 주님앞에 무릎꿇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 믿음의 정확한 현주소를 다시 확인하는 귀한 말씀을 통해
나의 행복을 위해 사는 나날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살아내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올 한해 더욱 말씀과 기도에 힘쓰라 하셨으니
게으름으로 인해 실패하지 않기를 소망하며
게을러 쓰러지면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시작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우리의 자녀들이 왜 이렇게 폭력적으로 변하는지에 대해 돌아보면
우리 부모들이 먼저 신앙의 모범이 안대며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4:15-16]
15.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